시대는 변해도 교육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1906년 개교 이래 120년의 흔들림 없는 발걸음으로
삼육대학교는 사람을 깨우고 세상을 밝혀왔습니다.

삼육,120년 이야기

1906년 순안의 작은 배움터에서 오늘의 삼육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해온 120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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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명학교 설립(1906~1908)
의명학교 설립(1906~1908)

1905년 가을,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William R. Smith가 내한하였다.
그는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평안남도 순안에서 교육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교단 지도자들은 학교를 일본에 설립하고 조선의 청년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수학하는 방안을 고려하였으나, 스미스와 조선 교인들은 조선의 복음화와 근대화에 기여하기 위해 조선 땅에 학교를 세우고자 하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여기에 특별한 소명을 따라 내한한 미미샤펜버그 선교사도 합류하여 교육사업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헌신하였다. 지역 유지의 도움으로 순안에 부지를 확보하고, 재림교회 본부의 지원을 받아 기와집 일곱 칸 규모의 건물을 세워 교회와 민족을 위한 사역자 양성 기관을 설립하였다.
이후 미국의 Riley Russell 의사가 합류함으로 일곱 칸짜리 작은 학교는 남자 교실, 여자 교실, 예배실, 인쇄실, 진료실로 알차게 구성되어 교육과 의료, 출판사업의 시초가 되었다. 이 학교가 오늘날 삼육대학교의 뿌리가 되었다. 

사역자 양성소(1937)
사역자 양성소(1937)

세계 경제대공황과 일본의 종교정책이 점차 억압적인 기조로 전환됨에 따라, 신학교는 임시 휴교 후 통신교육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이후 1937년 1월 합회 평의원회는 통신 교육을 다시 학교 형태로 전환하기로 결정하고, 명칭을 '사역자 양성소'로 정하였다. 1937년 5월 개교한 양성소는 1942년 5월,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기까지 5년 간 활발한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합회 신학교(1931)
조선합회 신학교(1931)

의명학교에서 병설 운영되던 신학교는 1931년 4월 서울로 이전하여 ‘조선합회 신학교’라는명칭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분단 이전에 서울로 이전함으로 선교사업 확장과 고등교육 발전을 안정적으로 이어 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 시기의 신학교는 교회 사역자 양성을 목표로 전략적으로 운영되었다. 합회 평의원회가 필요 인원을 결정하면, 교육·출판· 의료 등 각 분야에서 사역하던 인재를 선발하여 전원 장학금으로 교육하는 체계적인 방식이 도입되었다.

사람을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삼육대학교 개교 120 주년 사람을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삼육대학교 개교 120 주년 사람을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삼육대학교 개교 120 주년 사람을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삼육대학교 개교 120 주년

120주년 행사일정

120년의 의미를 함께 나누는 다양한 행사와 일정을 안내합니다.

일정 전체 보기
D-8 08.01(토) ~ 08.31(월)
미지정 개교 120주년 자랑스러운 동문상
D-16 08.09(일) ~ 08.13(목)
백두산 교직원 역량 강화 해외 연수(역사탐방)
D-24 08.17(월) ~ 08.31(월)
캠퍼스전역 개교 120주년 K-Bridge Camp in Korea
D-25 08.18(화) ~ 08.28(금)
튀르키예 개교 120주년 학생 임원 해외탐방
D-33 08.26(수) ~ 08.27(목)
장근청홀 BFFL 워크숍: 서번트 리더십